대치동에서는 빠른 선행이 흔한 교육 풍경 중 하나입니다. 초등학생이 중학교 과정을, 중학생이 고등학교 수학을 배우는 것이 낯설지 않죠. 미적분을 선행하기 위해 만난 어린 학생을 두고 “이렇게 어린 나이에, 정말 이 수학이 필요할까?” 하는 의문이 가시지를 않았습니다.
제 경험을 바탕으로 선행학습을 계획하는 부모님들께 가르치는 입장에서 조언을 드리고자 합니다.
초등 5학년에게 미적분? — 개념 혼동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
처음 맡았던 학생은 초등학교 5학년이었습니다.
하지만 교재는 고등학교 미적분이었죠.
너무 이른 시기에 복잡한 개념을 접하면, 수학 자체를 ‘어렵고 무서운 것’으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걱정됐습니다. 실제로 공부보단 하고 싶은 것들이 더 많은 나이여서 이 친구도 집중력이 30분을 넘기지 못했어요.
그래서 단순히 지식을 ‘전달’하기보다, 함께 생각하며 수업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.
설명은 짧게, 질문은 길게. 수업이 끝날 무렵에는, 배운 개념을 그만의 말로 다시 설명해보게 했습니다.
놀랍게도, 이 친구는 교과서 용어가 아닌 자기만의 언어로 개념을 정리하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.
그건 단순한 암기가 아니라 ‘이해’였고, 이 친구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.
하지만 모든 학생들이 이 친구와 같은 수는 없기에 다음 3가지 사항을 기준으로 선행 수업을 계획하시길 당부드립니다.
선행이 빠를수록 ‘개념 정착’에 더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.
지나치게 높은 수준의 내용을 접하면, 쉬운 문제도 괜히 어렵게 접근하게 됩니다.
개념을 제대로 ‘자기 언어’로 설명할 수 있는지를 꼭 확인해주세요.
중1인데 중3 수학 — 자존감을 잃은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
두 번째 학생은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이었습니다.
중1 과정과 함께 중3 수학을 선행하고 있었지만, 표정은 늘 어두웠습니다.
들어보니, 동생은 초등학교 5학년인데 미적분을 배우고 있었고, 집안 분위기도 매우 ‘공부 중심’이었습니다.
그 아이는 “나는 수학을 못한다”는 생각을 이미 굳혀버린 상태였습니다.
저는 이 친구가 저를 과외 선생님보다 형처럼 친근하게 느끼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. 수학이 싫고 지겨운 것이 되지 않도록, 두려운 감정을 줄여주기 위한 첫 단계로써 그리 하였는데요.
그 결과, 처음엔 20~30분도 힘들어하던 아이가 어느새 1시간 가까이 수업에 집중하기 시작했고, 수학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도 점차 줄어들었습니다.
선행을 할 때 이런 태도를 가진 학생들이 상당히 많은데요, 이런 경우라면
아이의 자존감을 먼저 지켜주세요.
‘얼마나 앞섰는가’보다 ‘얼마나 좋아하게 되었는가’가 진짜 실력의 시작입니다.
수학을 싫어하게 만든 선행은, 오히려 ‘뒤처짐’을 더 크게 만듭니다.
3. 선행학습, 이렇게 설계해보세요
나이보다 수준을 우선 평가하세요.
아이의 이해력과 집중 시간에 맞춘 단계부터 시작하세요.
개념 이해 여부를 확인하세요.
개념을 자기 말로 설명할 수 있는지를 체크하세요. 복습보다 ‘표현’이 중요합니다.
흥미와 자존감을 함께 키우세요.
정답보다 “아, 나도 할 수 있다”는 감정을 먼저 심어주세요.
선행학습은 빠름이 능사가 아닙니다.
아이가 '왜' 배우는지, 그리고 '어떻게' 받아들이는지를 이해할 수 있어야 비로소 실력이 됩니다.
자녀의 선행학습을 고민하고 계신다면,
‘더 빠르게’보다 ‘더 깊게’, ‘더 많이’보다 ‘더 좋아하게’라는 관점으로 접근해보시기를 권합니다.



